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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함무라비_미생을 위한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생겼다. <미스 함무라비>는 방영 전 고아라와 엘 두 사람의 연기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역시 드라마는 까고 봐야 안다 라는 말처럼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이 드라마는 두 배우의 훈훈한 비주얼뿐 아니라 칭찬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은 드라마이다.

현직 부장판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대본에도 참여해서인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군상들의 성격이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극에 더 몰입하면서 가슴을 찡하게도 분노하게도 만든다.

특히 3회에서 다룬 미러링 이라든가 권력에 의한 성희롱 문제를 남자인 작가가 이렇게 시원하고 디테일하고 균형감있게 썼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후배 아이디어나 뺏는 그런 분이 정말 더 올라가도 되겠어요? '

임바른의 아이디를 도용해 학술지에 쓴 성공충 판사의 일에 관해 오름은 부당하며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성공충 판사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아랫사람을 쥐어짜며 회사를 위해 충성하며 막말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 내가 원래 여판사는 배석으로 받지 않는데 이건 뭐 워낙 여판사가 하도 많으니 도리가 없네 ' ' 여성을 배려해서 하는 소립니다 '

' 아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나랑 일하는 동안에는 연애니 결혼이니 신경쓰지 말고 일에만 전념하세요. 여판사들 말이야 일 좀 할만하면 결혼한다 휴가간다 조금 지나면 임신했다 출산휴가 간다 이 바쁜 민사합의부에 전력이 절반으로 줄어버리니까 전투를 할 수 없잖아 '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남들 앞에서 유유히 달리는 익숙한 토끼는

앞사람들 등을 쳐다보며 끝도 없이 기어야하는 거북이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


성부장의 모자란 점들 나도 잘 압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무리할 정도로 애쓰죠

임판사 같은 깔끔한 엘리트 눈에는 가당치도 않겠지

근데 말이죠, 이 조직은 임판사같은 예외적인 엘리트가 바글바글한 곳이에요

성부장 같은 거북이 입장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 잡고 싶어 불안초조해 지는 것이죠


임판사는 젊고 뛰어난 사람이니 빛날 기회가 무궁무진 합니다.

성부장 같은 사람에게도 빛날 기회를 양보하면 안 될까요, 조직에는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천재는 아니지만 평생 성실하게 노력하는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어야죠


 수석부장님 그래도 이건 반칙이지 않습니까?

원칙주의자인 바름에게 있어 성공충의 반칙은 받아들이기도 납득하기도 어렵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고 연장자라서 반칙을 해도 용인할 수 있다는 건가? 개떡같은 소리


한참 선배인 성부장에 치명적인 문제제기를 한다면 임판사도 상처를 받습니다

사회에는 평판이라는게 중요해요 야박한 사람 모난 사람으로 비춰지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쓸모가 없어요

사람됨이 더 중요하니깐 사람사는 세상은 정답만 있는건 아니니깐 조급해 하지 말아요

조금 억울해도 그 또한 다 지나갑니다.


우리나라가 헬조선이 된 이유를 가이드상이 세상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임바른 판사에게 협박하는 장면. 윗 사람들은 좋은게 좋은거다라며 참는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윗선의 반칙과 불공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 조직에 융화되기 어려운 사람으로 비난하니 올바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조직과 사회가 나가지 못하며 고이고 썩은물에서 자란 사람들이 상사가 되어 되풀이 되는 사회.

억울한걸 억울하다고 하는게 사람됨을 평가 당하고 야박하고 모난 사람으로 비추어지는가. 


그렇게 흥분할 일 아니에요 내 의견 베낀건 그다지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출세하겠다는데 굳이 정색하고 나설 의욕도 안 생기네요


아 ~  역시 잘나신 분은 다르네요,  뭐 아둥바둥하는 판에 끼기 싫으시다? 

홍판사를 혹사하는 성공충 판사에게 관여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는 오름의 입장에서는 바름이에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따져 묻게 되는데 나 또한 아니 말투가 왜 저렇지? 라며 불편해 했었다.

사실 오름의 말투가 거친건 사실이지만 민폐 캐릭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미스 함무라비는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작가의 페르소나로 여겨지는 임바른 판사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독특한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은 오름을 걱정하는 바름이의 감정에 이입을 하게 되고 상황을 알고 있지만 오름은 바름이의 속사정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설상 오름이가 행동에 옴긴다 한들 바름이는 피해를 보는거 1도 없다. 

징계를 받는 것도 모두에게 비난을 받는 것도 모두 오롯이 박 차오름이 짊어지게 될 것인데 바름이에게 단 한줄 비꼰 대사를 했다고 해서 여주 캐릭터인 오름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그간 드라마에서 남자 캐릭터가 반말을 하거나 비꼰 대사들은 나쁜남자라며 멋있다고 추앙받기도 하였는데 당돌하고 주도적인 여자 캐릭터에 대한 잣대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느끼면서 씁쓸했다.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리고 냉정하게 국민입장에서 봅시다

출세를 위해서라도 죽어라 일하는 판사가 나을까요 판사됐다고 일 안하는 판사가 나을까요?


아니 왜 인간을 그렇게 두 종류로만 분류하세요

사명감 책임감 보람 뭐 이런 얘길하면 순진한 건가요


그런게 평가받고 보상받는 구조가 아닌 이상 순진한 얘기죠

인간의 선이란 가끔은 강력하지만 이기심만큼 지속적이진 않으니깐

오름이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과거 회상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기사 딸린 차로 배웅 받을 정도로 부잣집 아가씨였다. 하고 싶은 말, 원하는 것을 가지며 아마 행동에 거침이 없었고 자존감이 높으니 남에게 베푸는 것도 넉넉했을 것이고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바름이는 개인주의자 성향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고 뛰어난 엘리트였지만 집안 형편은 어려웠으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물질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추상적인 가치관에 있어 바름이는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두 사람의 배경에 따른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명감과 보람 책임감과 같은 높은 도덕적 가치관을 추구해야 하나 바름이의 대사에 공감이 가는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미생이라 그런거겠지


' 제 3자라뇨, 동료잖아요, 남의 일인가요? 전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

'가만있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는거죠? '

' 뭐 시정이 안되면 연판장이라도 돌려야죠 ' 


' 저 그건 집단행동입니다' 


왜요? 집단행동이면 안되나요 

임판사님은 늘 개인주의자를 자처하시죠 그건 임판사님이 잘나서 강해서 그런거에요

약자들은 혼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가 없어요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구요


박 판사님, 집단 행동을 추구하는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마치 기업이 노조를 대하는 전형적인 논리, 집단행동을 하게 도면 너와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게 떠올랐던 대사.


홍은지 판사님이 언니가 지금 무슨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세요

관심 없으시죠? 임판사님은 살면서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관심.... 없었으면 좋겠다 나도...


오름의 행동은 거침없지만 천둥벌거숭이 마냥 무모하게 날뛰는 풋내기이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당장 행동에 옮겨야 직성에 풀리는 오름의 성격이 너무 막나가게 행동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극 중 초임 판사라는 설정으로 오름의 행동은 거칠고 이성적인 균형감이 없어 현실적인 사회생활에 젖어버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녀는 너무 튀고 당돌해서 상사라면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옆의 동료라면 피곤할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바름과 대비되어 오름의 감정적인 행동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를 하려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나? 지금은 경험이 없어 경거망동 해 보이는 오름이지만 적어도 오름이처럼 물결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 분위기로 생각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