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르웨이의 숲/TV 뭐 볼까?

갑의 횡포를 풍자한 무한도전의 <끝까지간다>

축구중계로 무한도전을 결방한 일을 투덜투덜하면서도 늘 토요일 저녁에 집에 있게되면 이제는 습관처럼 보게 되는 무한도전을 시청하였다. 이선균 주연의 영화 제목과 같은 <끝까지 간다>는 예고편에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추격전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끝까지간다>편은 깐깐한 김태호PD와 제작진들이 10년간 고생해준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상여금을 지급하기 위해 김태호PD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계약서를 멤버들에게 들이미는 것이였다.






계약서의 내용은 MBC는 <갑>의 측, 무한도전 멤버들은 <을>로 되어 있으며 을은 갑이 제시한 규칙에 따라 충실히 임하며 돌발 행동으로 인한 불이익 또한 감수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갑과 을에 대한 계약서를 보면서 대한항공 조현아의  땅콩 회항과 백화점 지하주차장 모녀 등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을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계약서에는 비록 방송이긴 하지만, 을이 행사할 수 있거나 혹은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하나 주어지지 않음에도 무도 멤버들에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한 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면서 제작진이 내민 계약서의 진정한 본모습이 드러났다. 상자에 담긴 상금은 무도 멤버들의 출연료에서 상금의 1/N의 금액만큼 차감되며 을의 상금은 누적되지 않지만 분담금은 누적되는 그야말고 기가 막히는 부당한 계약이었던 것이다. 마치 보험계약서의 보험지급이 되지 않는 사항을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놓은 것처럼 멤버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계약서로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었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부당한 계약은 최근 일어난 알바몬 사태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법으로 정한 최저시급을 가지고 만든 알바몬 혜리 광고는 정상적인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컨텐츠조합에서는 소상공에 대한 불만과 분쟁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광고를 중지할 것을 말했으며 결국 알바몬의 <갑>의 위치에 있는 사업장 고객의 의견에 따라 광고를 중지하기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의 뒷면에 숨겨진 것은 PC방과 만화방, 서빙과 같은 단순노동 업종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대학생들과 젊은 노동자들은 일을 해야하는 약자의 입장이기에 정당하지 않는 댓가를 받으면서도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약점을 이용해 엄연한 노동법 위반임에도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노예로 써야하는 알바생들이 최저시급이나 야간수당, 주유후무 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똑똑하게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심보가 괘씸할 수 밖에 없다.







상자는 열렸고 상자를 차지한 멤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는 억울하더라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기에 자신의 출연료에서 인출금은 차곡차곡 누적된다. 누적된 인출금은 빚이 되고 결국 남겨진 을들은 자신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라도 상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고 애쓴다. 돈에 대한 무도멤버들의 욕망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방송은 카메라감독도 못 따라가 멤버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정도로 끝까지 간다.


경쟁에 참여한 을들인 우리는 서로가 더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반 서민들의 신분상승의 유일한 사다리인 입시교육과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위한 비용은 빚이되고 실패하면 다시 을들은 취업을 위해 또 다시 비싼 비용을 치르는 스펙에 투자하는 챗바퀴에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운 좋게 을들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는 기업에 의해 나이가 들거나 조금의 능력이 미흡하다면 내쳐지게 되고 내쳐진 노동자는 질이 낮은 노동시장에 뛰어들거나 무도 멤버들처럼 빚을 떠 안게 될지도 모른다.







상자를 열때마다 2배씩 늘어나는 상금만큼이나 상자를 열지 못하는 을들의 빚 또한 늘어난다. 사실 무도 멤버들이 제작진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없더라도 차선으로 모두가 모여서 빚을 탕감할 정도의 상금이 나올 정도로 상자를 열어 모두가 상금을 나누어 가진 뒤 빚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상금은 무효화 되고 빚은 누적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빚은 상금을 벌어도 자신의 빚을 갚기에도 급급하고 무도 멤버들을 그저 구경하면서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제작진들 뿐이다. 자신들은 어떻게 해도 손해보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제시한 게임은 마치 은행과 대출자와의 악순환같다. 1%대의 주택대출상품을 내 놓으면서 저렴하고 언뜻 좋은 정책이지만 대출자는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며 거기에 집값 상승에 따른 이익도 집주인의 것이 아니라 은행과 나누어 가져야하며, 은행의 손실보전을 주택담보공사에서 하기에 은행은 전혀 손실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대출자는 앞으로의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뿐더러 설사 집값 상승이 되더라도 결국 집값의 이익은 당장의 소득에서 내야하므로 부담은 이중삼중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OECD 최고의 노동시간으로 최저의 임금으로 혹사 당하면서도 높은 물가와 집값으로 빚에 허덕이면서 아이하나 낳고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엔 아무리 노력해도 이 나라에서는 사치이고 괴롭다.  무도 멤버들이 주말 저녁 웃음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면서도 유재석의 열심히 하면 할 수록 더 힘들어 진다는 말이 씁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