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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이 영화 어때?

석조저택 살인사건 : 먼가 아쉬운 수작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소설 [이와 손톱]이라는 1955년 미국에서 발표된 빌 벨린저의 추리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이우역으로 잠깐 등장했지만 인상 깊었던 고수의 비주얼을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해방 후 경성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석조저택이라는 제목에서 으레 떠오르는 화려한 저택에서 펼쳐지는 서스펜스 영화가 나오는구나 하면서 기대했었다.

소설의 내용이나 결말을 전혀 모르고 포스터와 영화 타이틀만 보았을 때는 석조저택이라는 공간에서 밀실살인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클로즈드 써클 형식의 의심스러운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재판에서도 범인으로 몰리지 않는 완벽한 복수(?)를 하는 추리물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소설의 구성을 정직하게 따르고 있다. 마치 소설의 챕터를 나눈 것처럼 피고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증거물은 손가락을 두고 살인공방을 펼치는 법정씬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교차편집으로 보여면서 사건의 진실과 서스펜스의 절정으로 향하고 결말이 밝혀지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원작을 충실히 따르고 무리하지 않은 적절한 각색으로 나름 매끄러운 스토리진행을 보여주지만 추리물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나 몰입감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몇 가지 꼽자면 영화 초반에 고수가 연기한 최승민의 약혼녀와의 러브스토리가 개인적으로 길어서 지루했다. 약혼녀로 등장한 정하연 역의 임화영의 목소리가 다소 명랑한 톤이라 살해당하는 비운의 약혼녀 라는 이미지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어색했다. 러브스토리 부분은 짧게 편집하고 차라리 약혼녀의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에 대해서 관객들이 의혹을 느끼고 호기심을 느끼게 해야하는데 이건 죽기 전에 내가 여차저차 해서 이런 상황이에요 라고 성실하게 설명한 뒤 살해 당하는 게 예상된 수순이라 느껴서 인지 놀라거나 범인이 궁금해지지 않더라는 이야기.

적어도 제3의 인물일까 라는 추측이나 혹은 약혼녀가 숨긴 비밀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소위 쫄리는 맛과 이 사람이 진범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진범은 따로 있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있었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배우의 연기만은 칭찬해 주고 싶다. 해방 후 경성이라는 시대에 정말 잘 맞는 비주얼이다. 사실 고수is뭔들이겠냐만 하연과 사랑에 빠진 마술사와 입술흉터에 빠진 이, 어리숙하고 모자라 보이는 운전사 그리고 마지막에 남도진에게 완벽한 복수를 완성하는 장면까지 고수의 비주얼과 의상 그리고 연기 삼박자가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고수가 최승민 역할을 해 줘서 고마웠다. 얼굴이 잼있었다.


김주혁은 고수같은 꽃미남은 아니지만 경성 최고 재벌다운 고급미에 양애취를 한 스푼 더한 비주얼의 남도진을 연기했다. 끝까지 악한 악역으로 남았고 영화 내에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양아치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사기꾼이자 살인자인 남도진에 잘 어울렸다. 마지막 법정씬에서 예상하지 못한 목격자로 인해 악에 받친 연기도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영화 공조에서 김주혁이 맡은 차기성이 오버랩 되긴 했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빼 놓을 수 없는게 고수, 김주혁 두 배우의 의상과 남도진의 저택과 서재, 최승민이 살던 다락방과 마술사 시절 이곳저곳 떠돌던 시절의 호텔, 무대분장실 등등 화려하진 않지만 무겁고 차분한 색감에 엔틱한 가구들까지 영화 내의 미술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특히나 이런 배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살짝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소설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겠지만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당시에는 신선한 스토리일 지라도 요즘에 보기엔 다소 엉성하거나 유치해 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연출이나 편집을 통해서 추리 서스펜스 장르다운 몰입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반전 조차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라 흠잡을 곳은 딱히 없지만 그렇다고 포인트가 되거나 아주 재미있는 건 없는 답안지를 보는 아 뭔가 조금 더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작 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