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동안 감성적인 연출을 보여줬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1920년대의 모습을 어떻게 담았을까 궁금했다.
헐리우드는 우리나라든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가 드문 요즘에 작년 <암살>과 비슷한 시대적 배경에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로 우뚝 선 여배우 손예진이 힘있는 여성전기 영화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중반부터 내가 뻔해서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아픔에에 눈물을 닦으며 봐야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일제 치하시절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로 만13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진 후 유학이라는 명목하에 일본의 감시를 받으며 숨막히는 소녀시절을 보내고 어린시절 정혼자였던 김장한의 도움으로 조선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실패하고 소 다케유키와의 정략결혼 후 딸 정혜를 낳고 일본에서 살아간다.
일본의 항복으로 조선의 광복 후에도 이해관계에 얽혀 조선땅을 밟지 못하고 결국엔 미쳐서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되는 불우한 인생을 살게된 공주라는 신분외에는 대단할 것도 보잘 것도 없는 여인의 삶은 담은 영화이다.
평범한 스토리의 영화 덕혜옹주를 보면서 느낀건 배우의 힘이 참 중요하구나 였다. <아가씨>처럼 화려한 미장센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었고 <암살>처럼 액션이나 사이다 전개가 있는 스토리도 아니라 지루할 수 있기에 흥행부담을 가지고 출발한 영화이다. 오직 손예진 박해일 두 배우가 연기로 멱살 잡고 끌고간 영화로 개인적으로 이 영화로 손예진 이라는 배우를 재평가 하게 되었다.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덕혜의 어린시절 첫 사랑이었던 김장한은 일본육사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로 성장해 덕혜를 지키는 기사로 가슴 졸이는 로맨스와 강제징용 노동자들 앞에서의 연설이나 독립 운동가들의 죽음, 거기에 다소 거슬리긴 했지만 라미란, 정상훈 두 배우의 코믹함을 버부려 웃음 눈물 감동의 요소를 잊지 않고 넣었다.
하지만 사실 덕혜옹주는 영화적으로 실패가 눈에 띄는 영화였다. 전기영화로도 로맨스 영화로도 일제치하의 식민지 백성의 고통스러운 삶도 어느 것 하나 깊이있게 들어가지 못했다. 애초에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만큼 덕혜옹주의 여자로서 치열한 삶이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거나 차라리 영화적 픽션을 가미하여 김장한과의 절절한 로맨스를 넣었더라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을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인 로맨스를 강조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화를 본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왜곡에 코웃음이 난다고.... 물론 후반에 나온 현대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실제 덕혜옹주는 감동적인 연설(영화적 픽션에 의해서 충분히 용인가능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을 하지도 않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도 알 수 없고 피폐한 국민들의 삶을 아는 것도 아닌 공주로 태어난 거 왜엔 아무것도 없는 여자를 왜 영화하 하냐고 시대에 역주행한다고 느껴질 만큼 평면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감독은 덕혜옹주는 위대한 여성으로 소위 '국뽕'에 찬양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실제로 대한제국의 왕실을 압박(고종의 독살)하는 것은 대중들이 보았을 때엔 나라를 짓밟는 것과 동일하다고 느꼈을 것이라는 가정과 사실을 더해 상징적 의미가 담긴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선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공주로 태어난거 말고 아무것도 없는 여자를 영화로 만든게 불쾌하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명성왕후 시해 사건에 분노하는가와 비슷한 매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시절 자신의 곁에 있어주던 당찬 복순이가 일본 군인에게 맞으며 끌려갈 때 두 사람의 헤어짐에 괴로워 하던 마음,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 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한 번 보지 못하고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덕혜의 숨죽여 울던 뒷모습을 울부짖는 것이 아닌 덤덤하게 표현한 손예진의 연기에 가슴 먹먹해 지면서 코가 시큰거렸다.
덕혜는 황실의 여인으로 혹은 나라의 독립을 꿈꾸는 당찬 여인으로 사랑을 하고싶은 여인 이도저도 아니거나 혹은 모든 점을 아우르는 밸런스가 좋던 간에 극 중 갈등이나 반전을 꾀하는 부분이 없어 극에서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점은 있다.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은 끝까지 덕혜를 지켜주고 윤제문은 늘 보여주던 스타일로 시대적의 악역을 보여주는 예상대로의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덕혜옹주의 슬픈 인생과 손예진의 연기는 내 눈에 눈물을 차게 만들더라 ....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했으나 자신들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숨기기에 그녀를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여전히 그녀의 입국은 금지된다. 친일에서 친미로 돌아선 윤제문의 비열한 모습에 덕혜가 웃음과 울음이 섞인 미쳐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도 미쳐버리지 않을까 라는 이해와 현재의 여러가지가 떠오르더라....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그들의 후손이 당당한 이 나라에 진정한 독립은 왔는가? 대답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덕혜를 찾은 장한에게 ' 10분이면 온다고 했잖아요.... 10분이 왜 이렇게 길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 ' 라며 노인이 된 덕혜의 절제된 슬픔까지 연기한 손예진과 끝까지 덕혜를 지켜준 장한의 로맨스에서 무너졌다. 노인이 되어 만나 덕혜를 애틋하게 챙기는 장한의 모습과 어린시절 놀던 모습을 회상하며 미소짓는 덕혜의 얼굴까지 잔잔하게 아름답게 끝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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